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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 예언자 무함마드의 군사 조력가이자 맹장으로 초기 이슬람 세계 확장에 가여하였다. ​ 예언자 무함마드가 처음 계시를 받고, 622년 헤지라를 할 때까지 무슬림으로 개종하지 않고 메카의 우마이야가(家)와 뜻을 함께하며 무함마드에 반대하는 행보를 보였다. 625년 우후드전투에서는 그의 활약으로 무함마드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다. 무함마드가 메카로 입성한 후 무슬림으로 개종하였고, 이슬람 영토 확장에 일조하였다. 예언자의 사후, 칼리프직을 계승한 아부바크르는 반(反)이슬람 세력을 처치하고 아라비아 반도를 통합∙통치하기 위하여 그를 군 수장으로 임명하였다. 632년 부자카 전투, 나크라 전투, 야마마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며 3개월 만에 아라비아 반도를 통합하였다. ​ 이후 633년 사산왕조페르시아 점령을 목표로 페르.. 2023. 8. 16.
프리드리히 2세 프로이센의 국왕(재위 1740~1786). 강력한 대외정책을 추진하여 오스트리아의 제위상속(帝位相續)을 둘러싼 분쟁에 편승, 슐레지엔 전쟁을 일으켰다. 오스트리아, 러시아와 의 관계가 악화되자 영국 ·프랑스 간 식민지 전쟁에서 영국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7년전쟁이 시작되었다. 국민의 행복 증진을 우선한 계몽전제군주로 평가된다. 드리히 대왕(Friedrich der Grosse)이라 불린다. 소년시절에 프랑스인 가정교사의 교육을 받아 프랑스 문화에 심취하여 독일문화를 경멸하게 되었으며, 프랑스 문학과 플루트 연주에 골몰하였기 때문에 그를 엄격한 무인(武人)으로 키우려는 부왕(父王)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노여움을 샀으며, 18세 때 어머니의 친정인 영국 궁정으로 탈주하려고 하다가 잡혀 감금당하고, 사형선고.. 2023. 8. 16.
구스타브 2세 스웨덴의 왕(재위 1611~1632), 러시아와 싸워 발트해 동쪽으로 세력을 확대하고 폴란드를 압박, 강국 스웨덴의 기반을 구축했다. 프랑스의 후원을 얻어 30년전쟁에 개입했다. 징병제로 강력한 국민군을 만들었다. 비범한 군인이었으며, 러시아와 싸워서 발트해(海) 동쪽으로 세력을 확대하고 폴란드에도 압박을 가하여 강국 스웨덴으로서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발트해 연안의 상업과 신교(新敎)를 방위하기 위하여 프랑스의 후원을 얻어 30년전쟁에 개입하였다. 1631년 틸리의 황제군을 브라이텐펠트에서 격파하고, 남부 독일로 진격하였으나, 1632년 뤼첸전투에서 바렌슈타인군(軍)을 격파하면서 전사하였다. 국내정치에서도 여러 가지 개혁을 추진하였다. 특히 징병제(徵兵制)로 강력한 국민군을 만들어 용병제(傭兵制)에서 상.. 2023. 8. 16.
벨리사리우스 비잔틴제국의 명장, 대 반달족 전투, 대 고트족 전투등에서 총사령관을 지냈다. 반달제국을 멸망시켰다. 동(東)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재위 527∼565)의 동서(東西) 대군사작전 때 활약하였다. 529∼531년 대(對)페르시아 전투의 군사령관을 거쳐, 아프리카에서 대 반달족(族) 전투(533∼534), 대 고트족 전투(535∼540)의 총사령관이 되어 반달왕국을 멸망시켰으며, 541∼543년 대 페르시아 전투를 지휘하였다. 544년 제2차 고트 전쟁의 총사령관으로서 이탈리아로 건너갔으나, 549년에 그 지위를 사퇴하고 콘스탄티노플에 귀환하였다. 551년 일단 은퇴하였으나, 559년 훈족(族)의 격퇴를 위해 다시 기용되었다. 562년 음모의 혐의를 받았으나, 나중에 혐의가 풀려 모든 명예를 회복하였다... 2023. 8.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