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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레이만 1세 오스만제국의 제10대 술탄 ​ 터키인들에게는 ‘법을 만든 황제’, 유럽인에게는 ‘화려한 황제’로 불린 술탄으로, 치세 중 영토의 확장과 법률·문학·예술·건축 등의 분야에서 큰 업적을 이룩하여 제국의 절정기를 맞게 하였다. 즉위와 동시에 동유럽으로의 공세를 개시하여 베오그라드를 거쳐 부다페스트를 점령하고, 빈에 대한 포위를 감행하는 한편, 에게해 어귀에 있는 로도스섬의 성채를 공략하여 세인트 요하네 기사단으로부터 이를 탈취하였다. 또 메흐메드 2세(Mehmed II) 이후로 분쟁을 되풀이해 온 이란과의 관계를 무력으로 조정하여 아시아 ·유럽 ·북아프리카에 걸치는 대제국을 이루었다. 내정면에서는 능률적으로 정비된 행정관리제도를 수립하여 봉건제도의 완성, 교육 및 법 제도의 완비, 문예보호와 중요 건축물의 건.. 2023. 8. 18.
악비 중국 남송 초기의 무장(武將)이자 학자이며 서예가. 북송이 멸망할 무렵 의용군에 참전하여 전공을 쌓았으며, 남송 때 후베이[湖北] 일대를 영유하는 대군벌(大軍閥)이 되었지만 무능한 고종과 재상 진회에 의해 살해되었다. ​ 자는 붕거(鵬擧)이며 상주 탕음현의 가난한 농민 출신이지만 금(金)나라 군사의 침입으로 북송(北宋)이 멸망할 무렵 의용군에 참전하여 전공을 쌓았다. 북송이 망하고 남송 때가 되자 무한(武漢)과 양양(襄陽)을 거점으로 후베이[湖北] 일대를 영유하는 대군벌(大軍閥)이 되었다. 그의 군대는 악가군(岳家軍)이라는 정병(精兵)으로, 유광세(劉光世)·한세충(韓世忠)·장준(張俊) 등 군벌의 병력과 협력하여 금나라 군대의 침공을 화이허강[淮河], 친링[秦嶺] 선상(線上)에서 저지하는 전공을 올렸다. .. 2023. 8. 18.
튀렌 프랑스의 장군·자작. 프롱드의 난 때 반왕당파에 가담했으나 왕당파로 돌아와 궁정군 총사령관으로 반란군을 궤멸시켰다. 에스파냐를 공략해 됭케르크의승리를 도왔고 플랑드르전쟁, 네덜란드전쟁의 총사령관으로 참전했다. ​ 부이용공(公) 앙리의 차남으로 15세에 군인이 되어 A.J.리셜리외의 인정을 받았다. 30년전쟁에 종군하여 1640∼1643년 에스파냐군을 격파하였으며, 플랑드르와 라인강(江) 대안의 여러 성을 공략하였다. 사교계에 군림하였던 롱빌공비(公妃)를 연모하여 프롱드의 난에서는 당초 반왕당파에 가담하였으나, 결국은 왕당파로 돌아와 궁정군의 총사령관으로서 프롱드파의 대(大)콩데가 지휘하는 반란군을 궤멸시켰다. 이후 루이 14세의 친정과 함께 다시 중용되었다. 1658년 에스파냐를 공략하여 됭케르크의 승리.. 2023. 8. 18.
에파미논다스 고대 그리스 테베의 장군 ·정치가. 보이오티아연맹의 해체를 노린 스파르타의 요구를 거부해 침입한 스파르타 군을 사선진전술로 물리쳐 패권을 빼앗았다. 펠로폰네소스에 원정해 아르카디아와 메세니아를 독립시켰고 테베의 패권 확립에 노력했다. ​ 초기의 경력은 불분명하다. 피타고라스학파의 류시스에게 사사하였고, 뛰어난 변설의 재능과 기지(機知)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BC 371년 보이오티아 연맹위원에 선출되어 스파르타의 평화회의에 참석하였고, 그 회의에서 보이오티아연맹의 해체를 노린 스파르타의 요구를 거부하였다. 이에 반감을 사 침입한 스파르타군을 레우크트라에서 맞아 싸웠는데, 새 전술인 사선진전술(斜線陣戰術)을 사용하여 적군 1만에게 결정적 타격을 줌으로써 스파르타의 패권을 빼앗았다. 이듬해 펠로폰네소스에 원정.. 2023.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