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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게시판119

악비 중국 남송 초기의 무장(武將)이자 학자이며 서예가. 북송이 멸망할 무렵 의용군에 참전하여 전공을 쌓았으며, 남송 때 후베이[湖北] 일대를 영유하는 대군벌(大軍閥)이 되었지만 무능한 고종과 재상 진회에 의해 살해되었다. ​ 자는 붕거(鵬擧)이며 상주 탕음현의 가난한 농민 출신이지만 금(金)나라 군사의 침입으로 북송(北宋)이 멸망할 무렵 의용군에 참전하여 전공을 쌓았다. 북송이 망하고 남송 때가 되자 무한(武漢)과 양양(襄陽)을 거점으로 후베이[湖北] 일대를 영유하는 대군벌(大軍閥)이 되었다. 그의 군대는 악가군(岳家軍)이라는 정병(精兵)으로, 유광세(劉光世)·한세충(韓世忠)·장준(張俊) 등 군벌의 병력과 협력하여 금나라 군대의 침공을 화이허강[淮河], 친링[秦嶺] 선상(線上)에서 저지하는 전공을 올렸다. .. 2023. 8. 18.
튀렌 프랑스의 장군·자작. 프롱드의 난 때 반왕당파에 가담했으나 왕당파로 돌아와 궁정군 총사령관으로 반란군을 궤멸시켰다. 에스파냐를 공략해 됭케르크의승리를 도왔고 플랑드르전쟁, 네덜란드전쟁의 총사령관으로 참전했다. ​ 부이용공(公) 앙리의 차남으로 15세에 군인이 되어 A.J.리셜리외의 인정을 받았다. 30년전쟁에 종군하여 1640∼1643년 에스파냐군을 격파하였으며, 플랑드르와 라인강(江) 대안의 여러 성을 공략하였다. 사교계에 군림하였던 롱빌공비(公妃)를 연모하여 프롱드의 난에서는 당초 반왕당파에 가담하였으나, 결국은 왕당파로 돌아와 궁정군의 총사령관으로서 프롱드파의 대(大)콩데가 지휘하는 반란군을 궤멸시켰다. 이후 루이 14세의 친정과 함께 다시 중용되었다. 1658년 에스파냐를 공략하여 됭케르크의 승리.. 2023. 8. 18.
에파미논다스 고대 그리스 테베의 장군 ·정치가. 보이오티아연맹의 해체를 노린 스파르타의 요구를 거부해 침입한 스파르타 군을 사선진전술로 물리쳐 패권을 빼앗았다. 펠로폰네소스에 원정해 아르카디아와 메세니아를 독립시켰고 테베의 패권 확립에 노력했다. ​ 초기의 경력은 불분명하다. 피타고라스학파의 류시스에게 사사하였고, 뛰어난 변설의 재능과 기지(機知)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BC 371년 보이오티아 연맹위원에 선출되어 스파르타의 평화회의에 참석하였고, 그 회의에서 보이오티아연맹의 해체를 노린 스파르타의 요구를 거부하였다. 이에 반감을 사 침입한 스파르타군을 레우크트라에서 맞아 싸웠는데, 새 전술인 사선진전술(斜線陣戰術)을 사용하여 적군 1만에게 결정적 타격을 줌으로써 스파르타의 패권을 빼앗았다. 이듬해 펠로폰네소스에 원정.. 2023. 8. 18.
투트모세 3세 이집트 제18왕조 제6대 왕(재위 BC 1504∼BC 1450?). 아시아와 누비아에 여러 번 원정하며 광대한 영토와 방대한 전리품을 획득함으로써 크게 번영하였다. 탑문과 축제전 등을 건립하였고 오벨리스크를 세웠다. ​ 투트모세 2세의 서자였기 때문에 적출의 왕녀, 즉 투트모세 2세와 그의 왕비와의 사이에 태어난 이복 여동생과 결혼하여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투트모세 2세의 왕비 하트셉수트가 공동의 왕을 칭하며, 22년간이나 섭정으로서 실권을 장악하였기 때문에 왕권을 겨냥한 암투가 격심하였고, 그녀가 죽자 왕은 모든 건물에서 그 이름을 없애고 일파를 추방하였다. 적극적인 대외정책을 취하여 아시아에 출병, 메기도에서 카데시왕의 동맹군과 대전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아시아에 17회, 누비아에 2.. 2023. 8.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