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537 사람이 재산이다 조선시대의 거상 임상옥 역시 기화가거를 바탕으로 큰 부를 일으킨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조선 정조때부터 본격적으로 상업에 뛰어들었다. 의주를 본거지로 중국과 인삼무역을 통해 막대한 재산을 형성하며 천재적인 사업수완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임상옥은 단지 돈을 모으는데만 그친 것이 아니라 재산을 풀어 빈민을 구제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장사란 이익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이윤이며 신용은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이다.'는 말을 남겼다. 좋은 인맥을 만들려면 여불위와 임상옥처럼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람에게 아낌없이 투자해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 자신에게 커다란 도움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인간관계는 그렇게 자신의 이익만 채우려는 욕심을 버.. 2023. 7. 31. 포에니전쟁 카르타고는 소수의 귀족이 정치를 차지하여 평민과 원주민을 억압했고, 군대는 주로 외인을 고용하였다. 이에 비해 로마는 귀족과 평민 사이의 갈등도 해소되고 애국심에 불타는 자유농민들이 중심을 이루었기 때문에 군사력에서 카르타고를 앞도했다고 한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대단한 명장이다. 하지만 전쟁은 그 나라의 여러가지를 따지는거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구원군으로 왔지만 열심히 싸우지 않았다. 포에니전쟁을 보듯이 대한민국도 기득권층이 노블레스 오블레주를 실천해야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국방의 의무를 다할것이다. 2023. 7. 29. 독립운동가 - 이육사 호 육사(陸史). 본명 원록(源祿) 또는 원삼(源三), 개명은 활(活). 경북 안동(安東) 출생. 조부에게서 한학을 배우고 대구 교남(嶠南)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다. 1926년 베이징[北京]으로 가서 베이징 사관학교에 입학하였고, 1927년 귀국했으나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때의 수인번호 264를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 출옥 후 다시 베이징대학 사회학과에 입학, 수학 중 루쉰[魯迅] 등과 사귀면서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1933년 귀국, 육사란 이름으로 시 《황혼(黃昏)》을 《신조선(新朝鮮)》에 발표하여 시단에 데뷔, 신문사·잡지사를 전전하면서 시작 외에 논문·시나리오까지 .. 2023. 7. 29. 독립운동가 - 이봉창 1901년 8월 10일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용산 문창(文昌)보통학교를 졸업, 일본인이 경영하는 과자점 점원으로 있다가, 1918년 남만주철도주식회사(南滿洲鐵道株式會社) 기차운전견습생으로 들어갔으나, 1924년 9월 용산 일대에서 금정청년회(錦町靑年會)를 조직하여 간사로 있으면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듬해 형 범태(範泰)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大阪]에서 철공소 직공으로 일하다가 일본인의 양자가 되어 기노시타 쇼조[木下昌藏]라는 이름으로 도쿄[東京]·오사카 등지를 전전하였다. 1931년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에 가입, 임시정부 국무위원 김구(金九)의 지시를 받고 일본 왕 히로히토[裕仁]를 암살하기로 결심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여기에는 양이섭(梁履涉)과 이춘태(李.. 2023. 7. 29. 이전 1 ··· 105 106 107 108 109 110 111 ··· 13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