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속보 경쟁, 추측성·선정적 기사, "재난보도준칙' 지켜야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로 179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사고 직후 언론에선 속보를 내보내는 등 앞다퉈 관련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나친 취재 경쟁을 벌이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현장 유튜브 영상 등에 따르면, 유가족으로 추정되는 한 남성은 기자들 앞에서 "따로 기자 방을 만들어 달라고 건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유가족을) 부추기지 말아 달라"면서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데 몇 시에 탔느냐 어떻게 알고 왔느냐 질문하지 말아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어 "정중하게 부탁드린다"면서 "(유가족들은) 임계점이 와 있다.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다. 감정을 억누르고 참고 있다. 최대한 질서 정연하게 있는데 옆에서 자꾸 자극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독립저널리스트 미디어몽구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자들 너무 하다. 휴일이라 다들 수습을 현장에 보냈는지... 눈치도 없고 분위기 파악도 못한다"면서 "카메라를 함부로 들이 내밀지 않나... 가족들 궁금해하는 게 많을 텐데... 기자들이 먼저 관계자들에게 질문을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세월호 참사 때 그렇게 불신받았으면 개선되어야 하는데 언론은 변한 게 하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현직 조종사... "모든 기사는 확인 된 것 외에는 무시하라"
29일 <조선일보>는 "속도 제어 못한 '동체 착륙', 짧은 활주도 등이 사고 키운 듯"이라는 제목으로 무안공항 활주로의 길이가 짧아 사고가 발생했다는 추측성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불과 일 년 전인 2023년 12월 23일 <조선일보>는 "고추 말리는 공항 오명에도 100억원 들여 활주로 연장'이라며 "(무안)공항에선 지난해부터 약 500억원을 투입해 2800m 길이 활주로를 3160m짜리로 연장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누리꾼들은 지난해와 29일 <조선일보>의 보도 내용을 비교하며 사고의 원인을 왜곡보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현직 조종사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무안공항 활주로가 인천,김포, 제주공항보다 짧지만 나머지 국내공항들보다는 조금 더 길다"면서 "B-737/A-320 계열 항공기들에게 9000피트는 짧은 활주로가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모든 기사는 확인된 것 이외에는 무시하라"며 "지금 나오는 대부분의 언론 속보 기사들은 쓰레기이다. 추측하지 말라"고 꼬집었습니다.
한편, <조선일보>는 29일 오후 12시 31분 "무안공항 폭발 제주항공기 승객 175명 전원 명단"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 175명의 영문 이름과 성별, 출생년도, 국적 등을 그대로 노출한 채 보도했다가 삭제했습니다.
재난보도 준칙만 지켜도 되는데... 듣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기자와 쓰레기를 합성한 '기레기'라는 말이 당연시하듯 사용됩니다. 그만큼 언론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추락했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기레기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대한민국 기자들은 자체적으로 '재난보도 준칙'을 정해 놓았습니다.
<주요 재난보도 준칙>
제7조(비윤리적 취재 금지) 취재를 할 때는 신분을 밝혀야 한다. 신분 사칭이나 비밀 촬영 및 녹음 등 비윤리적인 수단과 방법을 통한 취재는 하지 않는다.
제10조(무리한 보도 경쟁 자제) 언론사와 제작책임자는 속보 경쟁에 치우쳐 현장기자에게 무리한 취재나 제작을 요구함으로써 정확성을 소홀히 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제14조(단편적인 정보의 보도) 사건 사고의 전체상이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단편적이고 단락적인 정보를 보도할 때는 부족하거나 더 확인돼야 할 사실이 무엇인지를 함께 언급함으로써 독자나 시청자가 정보의 한계를 인식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제15조(선정적 보도 지양) 피해자 가족의 오열 등 과도한 감정 표현, 부적절한 신체 노출, 재난 상황의 본질과 관련이 없는 흥미위주의 보도 등은 하지 않는다. 자극적인 장면의 단순 반복 보도는 지양한다. 불필요한 반발이나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지나친 근접 취재도 자제한다.
제18조(피해자 보호) 취재 보도 과정에서 사망자와 부상자 등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사람들의 의견이나 희망사항을 존중하고, 그들의 명예나 사생활, 심리적 안정 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제19조(신상공개 주의)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사람들의 상세한 신상 공개는 인격권이나 초상권, 사생활 침해 등의 우려가 있으므로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제20조(피해자 인터뷰)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사람들에게 인터뷰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인터뷰를 원치 않을 경우에는 그 의사를 존중해야 하며 비밀 촬영이나 녹음 등은 하지 않는다. 인터뷰에 응한다 할지라도 질문 내용과 질문 방법, 인터뷰 시간 등을 세심하게 배려해 피해자의 심리적 육체적 안정을 해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제21조(미성년자 취재) 13세 이하의 미성년자는 원칙적으로 취재를 하지 않는다. 꼭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부모나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제33조(현장 제재) 이 준칙에 따라 취재협의체가 합의한 사항을 위반한 언론사의 취재진에 대해서는 취재협의체 차원에서 공동취재 배제 등의 불이익을 줄 수 있다. 위반 정도에 따라 소속 언론 단체에 추가제재도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관공서를 출입하고 있는 언론사는 대부분 가입하고 있는 '한국기자협회'의 재난보도 준칙에는 비윤리적인 취재를 금지하고 무리한 보도 경쟁을 자제하고 선정적 보도를 지양하는 조항들이 있습니다.
특히 사망자와 피해자의 신상 공개나 유가족과의 인터뷰는 강요해서는 안 되며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고 정해놓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재난보도 준칙은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유가족이 나와 "자극하지 말아 달라"고 하소연을 했을까요
항공기 사고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 <다큐 9분>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서 "수십년 분의 항공사고 보고서와 기사를 보며 느낀 것이 있다"며 글을 올렸습니다.
운영자는 "속보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며 "지난 항공 사고 뉴스를 보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속보가 대부분이다. 초기에는 오보가 정말 많다.목격담도 대부분 착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궁금한 것이 많겠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모두 추측이다. 가십거리로 소비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또한 "책임자를 빨리 잡아낼 이유가 없다. 책임자가 빨리 드러난다고 더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차분히 지켜보며, 피해자를 돕고,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 사고의 상처를 빨리 수습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출처 : 아이엠피터뉴스(www.impete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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