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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게시판

맹사성

by 마릉손빈 2023. 8. 9.

본관 신창(). 자 자명(). 호 고불() ·동포(). 시호 문정(). 개성 출생. 1386년(우왕 12)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춘추관 검열()을 거쳐 전의승()·기거사인()·우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수원판관()·내사사인()·예조정랑()·시어사()·간의()를 지내고, 1400년(정종 2) 우산기상시()가 되었다. 1406년 이조참의·예문관제학을 거쳐 이듬해 진전사(使) 시종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와 한성부윤이 되었다.

1408년 대사헌에 오르자 왕의 허락도 없이 부마 조대림()을 국문하여 태종의 노여움을 사 한주()로 유배되었으나, 영상 성석린()의 변호로 풀려나 다시 기용되어 예조참판을 거쳐 1416년 판서()로 승진, 호조()·공조()를 거쳐 1419년(세종 1) 이조판서로 예문관 대제학을 겸하였다. 1425년 좌군도총제부판사()로서 성절사(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서 문신으로는 최초로 삼군도진무()가 되고, 1427년 우의정에 올랐다.

1429년 궤장()을 하사받고, 이듬해 《태종실록()》을 감수, 1431년 좌의정이 되고 다시 춘추관영사()를 겸임, 《팔도지리지()》를 찬진()하고 1435년 노령으로 사임하였다. 황희()와 함께 조선 전기의 문화 창달에 크게 기여했다. 남루한 행색으로 수령()의 야유를 받았는데, 도망하던 수령이 관인()을 못에 빠뜨려 후에 그 못을 인침연()이라 불렀다는 일화도 있다.

시문()에 능하고 음률()에도 밝아 향악()을 정리하고 악기도 만들었다. 또 청백리로 기록되고, 효성이 지극하여 정문()이 세워졌다. 작품에 《강호사시가()》가 있다.

출처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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