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룡(柳成龍, 1542~1607)은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을 수행하며 왜군을 물리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재상으로 알려져 있다. 자는 이견(而見), 호가 서애(西涯)로 관찰사를 지낸 류중영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풍산 류씨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로 받들어진다.
21세 때인 1562년, 형인 겸암 류운룡과 함께 도산으로 퇴계 이황을 찾아갔을 때 하늘이 내린 인재이니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것이란 예언을 받을 만큼 총명하고 명민하였다. 25세에 문과에 급제한 뒤 승정원·홍문관·사간원 등 관서를 두루 거치고 이조·병조·형조의 일도 거쳐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영의정의 자리에 올랐다.
류성룡은 정치가로, 경제·군사 전략가로 생애 대부분을 활약했지만, 학봉 김성일과 함께 퇴계 이황의 양대 제자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만큼 영남 사림에서의 위치도 공고하다. 그의 학문 방향은 체(體)와 용(用)을 중시한 현실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영의정 당시에도 이순신 장군에게 『증손전수방략』(增損戰守方略)이라는 병서를 손수 지어주고 실전에 활용하게 하기도 했다.
1590년 황윤길·김성일 등과 함께 통신사로 왜국의 정세를 살피고 온 뒤로 거의 말년까지 정란에 휩싸인 나라의 중심을 세우는 데에 전심전력하였다. 말년에는 북인으로부터 주화론자라는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는 정치적 고난을 겪기도 했다. 파직된 뒤에 향리에서 저술한 임진왜란의 기록 『징비록』(懲毖錄)을 비롯하여, 『신종록』·『영모록』·『지행설』 등을 지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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