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무굴제국의 제3대 황제. 무굴제국의 사실상의 확립자이다. 부왕 후마윤이 제국 재건 도중에 사고로 죽자 14세의 나이로 황제가 되었다. 그 후 40여 년 동안의 치세를 통하여 영토확장전쟁을 계속하여 고대 제국의 아소카왕에 비견되는 대제국을 건설하고, 무굴 체제로 일컬어지는 정치체제를 확립하였다.
인도 무굴제국의 사실상의 확립자이다. 부왕(父王) 후마윤이 제국 재건 도중에 사고로 죽자 14세의 나이로 황제가 되었다. 즉위 초에는 부왕의 친구인 바이람칸이 섭정(攝政)이 되어 정치를 담당하였으나, 1560년 그를 추방하고, 이어 1562년에는 측근들을 숙청하여 황제의 통제권을 확립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후 40여 년 동안의 치세를 통하여 영토확장전쟁을 계속하여 고대 제국의 아소카왕에 비견되는 대제국을 건설하고, 무굴 체제로 일컬어지는 정치체제를 확립하였다.
황제와 라지푸트족 제후(諸侯)와의 사이에는 혼인관계를 통한 군사동맹을 체결하여 화평을 유지하고, 힌두 소제후(小諸侯)들을 무력으로 압도하여 공납(貢納)을 바치도록 하였다. 무굴제국의 직할령(直轄領)에는 관료체제에 의한 강력한 통치가 행하여졌으며, 이러한 통치책으로 힌두교도 순례세(巡禮稅)의 폐지와 비(非)이슬람교도의 인두세(人頭稅) 폐지 등이 실시되었다. 기개와 도량이 웅대하여 포르투갈인과도 우호관계를 유지했으나, 1580년경부터는 그의 통치정책이 인도사회로부터 점차 유리되어갔고, 1582년 공포한 황제를 신으로 하는 새로운 종교인 신성종교(神聖宗敎)도 궁정의 극소수 신하들만이 신봉하였다. 결국 그가 세운 지배체제는 무력에 의한 인도 사회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춢처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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